'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이 있다. 이는 게임업계에도 통용되는 말이다. 게이머들은 주인공이나 그와 깊이 엮이는 주, 조연급 인물들이 멋있고, 귀엽고, 아름다운 것에 익숙하다. 심지어는 캐릭터의 외모만으로 팬덤이 형성되고 2차 창작물이 탄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최근 PC 게임 플랫폼 스팀(Steam)에선 이러한 공식을 깨고 흥행을 거둔 국산 게임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배불뚝이 아저씨를 내세운 넥슨 산하 민트로켓의 '데이브 더 다이버', 탈모 회사원 '김부장'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크래프톤 산하 렐루게임즈의 '마법소녀 카와이 러블리 즈큥도큥 바큥부큥 루루핑(이하 마법소녀 루루핑)'이 대표적이다.
대만의 인디 게임사 Obb 스튜디오의 '활협전'은 한 발 더 나아가 '무림에서 손꼽힐 정도로 못생긴 약관의 사내'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이렇듯 보편적 관점에서 '추남'에 해당할 수 있는 이들을 전면에 내세웠음에도 데이브 더 다이버는 지난 1년 동안 400만장의 판매량을 기록했으며 '마법소녀 루루핑'과 '활협전'은 출시 전부터 마니아층의 컬트적 인기를 끌었고 출시 후에도 호평을 받고 있다.
'못생긴 주인공'을 내세운 게임은 그 특성 상 수많은 대중에게 어필하긴 어렵더라도 마니아층의 눈길을 확실히 끄는, 소위 'B급 정서'와 연관이 깊다. 겉보기에는 부정적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노이즈 마케팅'을 떠올리게 한다.
스팀에서 이러한 B급 정서나 노이즈 마케팅이 효과를 거두는 원인 중 하나로 스팀이 '글로벌 플랫폼'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스팀 운영사는 미국의 밸브 코퍼레이션이지만 이용자는 물론 게임을 등록하는 퍼블리셔들도 세계 각국에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지난 한해 스팀에는 총 1만4435개의 게임이 출시된 것으로 집계됐는데, 하루에만 약 39개의 게임이 출시되는 셈이다. 이러한 환경에선 남들과 비슷하게 고품질 그래픽, 미형의 주인공을 내세우기보단 '못난이'를 내세워 눈길을 확 끄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인터넷 방송계에서 다양한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른바 '종합 게임 스트리머(종겜)'이 대중적이라는 점 또한 중요한 요인이다. 방송 스트리머와 시청자들은 재미있는 방송을 위해 항상 '독특한 콘텐츠'를 원한다. 자연히 미형의 주인공 외엔 매력을 찾기 어려운 게임보단 못난이를 내세운 독특한 게임이 방송 콘텐츠로 각광받는 것이다.
활협전을 비롯한 게임들이 '못난이'를 내세운 독특한 게임인 점은 분명하나, 이들이 모두 'B급 게임'이기에 성공했다고 보긴 어렵다. 이들은 제각기 게임으로서 장르적인 완성도를 갖추고 있는 것은 물론 스토리 상 주인공이 미형이 아니라는 점에 설득력을 부여하고 있다.
데이브 더 다이버는 바다를 탐험하며 해양 생물을 수렵, 채집하는 어드벤처 단계와 초밥집을 운영하며 여러 손님과 상호작용하는 경영 시뮬레이션 RPG 콘텐츠가 혼합돼있다. 주인공인 데이브는 초밥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아저씨라는 설정을 갖고 있다. 이는 베테랑 다이버임에도 배불뚝이인 외형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활협전은 무협을 배경으로 한 육성형 연애 어드벤처 게임이다. 언뜻보면 '심각한 추남'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내용으로 보이나, 주인공 조활은 외모로 인한 차별에 굴하지 않는 성실함에 무공 재능, 선량한 인품 등을 겸비해 '협객'으로의 자격이 충분한 인물로 묘사된다. 작중 여주인공 중 한 명인 하후란이 그의 외모를 두고 "경쟁할 여인이 생기지 않을테니 오히려 좋다"고 말하는 모습은 게임의 서사적 완성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마법소녀 루루핑은 단 3명의 개발진이 AI 기술을 적극 활용해 단기간에 개발한 작품으로 세 게임 중에선 가장 'B급'에 가까운 게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STT(Speech to Text) 기술을 활용한 '주문 외우기'라는 독특한 플레이 방식, 심각한 저출산 문제로 소녀들이 태어나지 않아 중년 남성마저 마법소녀로 차출됐다는 블랙 코미디적 세계관 등 게임성, 서사성 양면에서 완성도를 인정받고 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영향이 강한 콘텐츠 시장의 특성 상, 노이즈 마케팅은 게임적인 완성도가 담보되지 않으면 오히려 독이 되기 쉬운 위험한 방식"이라면서도 "대작 게임에 활용되긴 어려울지 몰라도 '빅 앤 리틀'이란 키워드로 대표되는 소규모 제작 게임이나 인디 게임 등에 있어선 앞으로 비슷한 형태의 시도가 계속 나타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